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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Story/강연·토론

2013년 2월 25일 연세대 경영대학 경영전문대학원 졸업식 축사

연세대 경영대학 경영전문대학원 졸업식 축사

 

김종훈의원(새누리당 강남을)25일 오후 2시 서울 신촌동 연세대 대강당에서 연세대 경영대학·경영전문대학원(학장·원장 박영렬)학위수여식에 참석해 축사를 했다.

 

 이날 김의원은 기업과 경영인이 국리민복의 중심입니다는 축사에서 특히 기업 경영 일선에서 일하게 될 후배들에게 세계무대에서 무한협력과 무한 경쟁을 통한 국익창출 그리고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국민행복에 기여하는 기업인의 역할을 강조 햇다.

 

 

 

 

 

 

 

 

 

기업, 그리고 경영인

국리민복의 중심입니다. 

 

국회의원 김종훈

 

 

존경하는 박영렬 학장님

사랑하는 모교 졸업식에 불러주신 데에 감사드립니다.

학위복을 갖추고 참석하신 후배 여러분,

그리고 자제분들이 훌륭하게 성장하여 학업을 마칠 수 있도록 뒷바라지해주신 부모님들, 교수님들

그리고 평소 존경하는 경영대학의 동창회장이신 김영진 한독약품회장님,

윤은기 경영전문대학원 총동창회장님(내빈 추가)을 비롯한 동문님들,

이렇게 기쁜 날 한 자리에서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무엇보다 졸업생여러분들께서 그 간의 학업을 잘 마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이제 교문을 나서서 우리 사회의 새로운 활력소로 활동하게 될 여러분들의 앞날에 성공과 성취와 하나님의 축복이 가득하기를 기원 드립니다. 

 

제 이야기로 시작해볼까 합니다.

1970년 백양로에 들어섰던 이 둔재는 겨우 759월에야 경영학 학사증을 받았습니다. 경영학을 배운 1-2학년 동안 스무살이 채 되지 않은 청춘의 나이에 몹시 방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경영학 기업의 운영에 관한 학문입니다. 기업-이윤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entity입니다. 과연 돈과 물질적 풍요가 인생의 전부일까라는 제 스스로의 질문에 답을 찾지 못한 채, 정치외교학과를 기웃기웃 했었습니다. , 좀 더 고상하고 그럴싸한 거 없나하고 찾아다닌 거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누군가가 오늘 제가 여러분께 드리고자 하는 말을 저에게 해주었더라면, 그런 실수는 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새롭게 들어선 길에서 나름대로 좋은 출발을 했습니다. 시험에 합격하여 외무부에 입사하고, 사무관이 되어서 연기해두었던 군대에 갔습니다. 군대 가서는 사무관이면 다냐? 라고 남들보다 기압(빳다)도 많이 맞았습니다.

 

세월이 지나 첫 해외 근무를 명령 받았습니다. 프랑스 파리가 첫 근무지였지요. 79년이었습니다. 색다른 문화와 선진문물들은 견문을 넓히기에 좋았습니다. 좋은 곳에는 오래 놓아두지는 않더군요.

 

2년쯤 되어서, 모두가 가기를 꺼려하는 아프리카 오지, 최빈곤국 중의 하나인 나라에 두 번째 해외근무를 명령 받았습니다. 어려운 임지(hard post)에서는 묵묵히 근무하면 아무도 일찍 불러내려하지 않습니다. 그땐 그랬습니다. 요즘은 형평성, 기회균등으로 많이 낳아졌다고 하지요.

 

(사진1) 3년하고도 3개월을 그곳에 근무하였습니다. 주변 환경이 어렵고, 생활여건이 힘들었지만 제 인생 어느 때보다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게 되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참으로 소중한 33개월이었습니다.

 

그 곳에서 신발장수 이야기를 실감나게 실행해보았습니다. 제가 보는 10명의 주민 중 8명 정도는 맨발이었지요. 신발 만드는 회사에서 그런 나라에 2개의 시장개척단을 각각 보냈다는 거지요.

 

첫 번째 개척단의 보고는 여기는 모두가 맨발이라 신발에 대한 수요는 제로에 가깝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 개척단의 보고는 여기는 아직까지 모두 맨발이다. 시장잠재력은 무진장이다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경우, 어느 쪽을 택하시겠습니까?

 

저는 두 번째를 택하였습니다.

마침 군사쿠데타가 나서 혁명정부가 들어서고, 바로 그때 우리나라의 대사도 교체되어 신임대사께서 그 나라 국가원수(혁명평의회장-당시 육군대위 였습니다.)에게 신임장을 제정하게 되었었는데,

(사진 2) 혁명정부답게 수도를 벗어나 황톳길을 두 시간여 달린 뒤 도착한 시골의 큰 나무 밑에서 신임장 제정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우리나라에 있는 신발공장에 흑고무신 500켤레를 주문하고 그것을 큰 푸대에 담아가져가서 당일 식장으로 몰려든 마을주민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난리가 났습니다. 덕분에 그 뒤로 우리 흑고무신과 슬리퍼에 대한 주문이 많이 들어왔습니다.

 

(사진 3) 그런데 대사님으로부터는 푸념을 들었지요. 신발을 서로 차지하려는 주민들의 난리로 엄숙해야하는 신임장제정식이 야단법석이 되어버렸던 것이지요.

 

이야기가 조금 다른 곳으로 흘러갔지만,

 

(사진 4) 제가 헐벗고 어렵게 사는 주민들을 보고 같은 동네에서 이웃으로 살면서 깨달은 가장 큰 것은 개인이든 국가이든 부(wealth)를 만들어간다는 것이 참으로 중요한 것이구나라는 깨달음이었습니다. (그때서야 대학 다닐 때 경영학 공부를 좀 더 열심히 착실히 할 것을 하고 뉘우쳐보았지만 때는 늦었지요.)

 

저는 여러분들께 말씀드립니다. 부는 행복에 이르는 충분한 조건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필요한 조건임에 틀림없습니다. 특히 국가가 하나의 경제단위로서 부를 창출하지 못하면 , 즉 부가가치를 만들지 못하면 그 불행은 고스란히 국민들이 감내해야할 것입니다. 여기에 상품과 용역을 생산해내는 경제 주체로서의 기업의 중요성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업의 활동, 부가가치 창출을 위해 끊임없이 개발하고, 혁신해가는 기업, 기업가 그리고 경영인은 바로 현대사회의 주인공입니다.

   

기업의 활동무대는 시장입니다. 시장에서는 경쟁이 있습니다. 경쟁의 결과는 평등하지 않습니다. 즉 앞서는 자와 뒤처지는 자가 생깁니다. 기회가 균등하고 경쟁의 과정이 자유롭고 공정하다면 결과의 다름을 문제 삼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국가사회라는 공동체에는 국민들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시장에 개입하여 규제와 조정의 역할을 하고 있는 정부가 있습니다.

 

반면 국제사회에서 즉 세계시장에서의 경쟁은 보다 치열하고 노골적입니다. 최종적 권위를 가진 정부가 없는 것입니다. 각국 정부가 모여서 규범을 만듭니다. 그 규범은 아직 많은 분야에서 미숙하고 부족합니다. 이런 무대에서는 한 나라의 기업과 정부는 대체로 행위자와 지원자로서 국익실현이라는 공동목표를 갖고 상호협력합니다. 새로운 시장 개척을 위한 외교적 지원, 대형프로젝트 수주를 위한 정책금융제공, 다른 나라 기업들보다 더 좋은 교역조건을 확보하기 위한 자유무역 협정의 체결도 정부 차원의 지원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세계무대에서 기업과 정부는 사이좋은 동반자의 모습을 보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이 국가단위의 공동체 속으로 돌아오면 행위자와 규제자로 바뀌게 됩니다. 정부는 국가라는 공동체의 공동선을 위해 많은 형태의 규제를 합니다. 국민건강, 안전, 환경보호와 같은 보편적이고 필요적인 규제 외에도 사회적 결속유지를 위한 소극적 형태의 affirmative 프로그램. 나아가서 빈부격차 해소를 위한 보다 적극적 형태의 재분배 정책도 있습니다.

 

이러한 정부차원의 규제와 조정은 개인의 창의성과 이를 바탕으로 한 자유로운 경쟁, 그 결과로서 발생하는 격차를 인위적으로 조정함으로써 창의와 경쟁을 저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무한대의 경쟁과 그로 인한 격차의 확대는 필연적으로 사회계층 간의 갈등을 유발하고 결과적으로 성장을 저해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 대외적으로 국가 이익 즉 국리를 목표로 동반자의 모습을 보여준 기업과 정부가 대내적으로도 민복, 즉 국민의 행복을 위한 동반자가 되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기업은 경쟁의 무대인 시장이 결국 공동체의 일부라는 점을 알아야겠습니다. 창출된 이윤이 결국 공동체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라는 평범한 사실을 잊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한편, 정부는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의 고리가 지나친 규제로 끊어져서 악순환으로 들어서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기업의 의욕이 저하되고, 시장이 역동성을 잃어버리면 성장을 이뤄낼 수 없습니다. 부가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복지 재원을 마련해 가기도 어려워질 것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일제 식민지라는 치욕에서 벗어나, 최빈곤국에서 중진국으로 성장했습니다. 짧은 기간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하고 세계에서 8번째 무역대국이 되었습니다.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조화롭게 발전시켜 나가는 데에는 성공한 기업들이 그 역할을 감당해주어야 합니다. 어려운 사정에 있는 사람들에게 양보와 관용을 요구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우리나라가 FTA를 처음으로 체결한 나라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칠레였습니다. 우리나라는 특정 품목이든 특정분야이든 개방이 화두가 될 때 마다 이해 집단의 저항과 이에 따른 사회적 갈등이 있곤 하였습니다. 아마도 한 세기 전 강압에 의한 개방이 종국에는 나라가 식민지로 전락 되어버린 아픈 기억이 우리 뇌리에 남아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자유무역이라는 미지의 해양으로 들어서면서 우리 정부는 매우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지구 반대편 경제규모가 만만하고 개방체제를 추구하고 있던 칠레였습니다.

자유무역이라고 말을 하지만 이것저것 예외와 조건을 많이 달고 있으므로 보다 자유로운 무역(Freer Trade)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협상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남미의 과수원이라 불리는 칠레 이었기에 우리 과수농가의 걱정이 많았습니다.

 

협상이 시작된 지 2년이 되어가도록 풀리지 않던 쟁점이 칠레산 사과, 배에 대해 협정 적용을 배제하고자 했던 우리 주장 - , 칠레산 사과, 배에 대해서는 특혜관세를 허용치 않음으로써 우리 사과, 배 재배 농가를 보호해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칠레가 마침 이런 우리 입장을 수용하였지만 한 가지 조건으로 칠레도 우리나라산 세탁기와 냉장고를 협정적용에서 제외하겠다는 입장이었습니다. 협상(deal)은 그렇게 타결되었습니다.

 

여러분 여기에서 한 번 생각을 해봅시다.

우리나라가 칠레로부터 사과, 배를 사오게 되는 value와 우리나라가 만드는 세탁기. 냉장고를 칠레에 수출하는 value를 비교 해보면 후자가 훨씬 큰 것이 사실입니다.

 

경제적인 관점에서는 이 두 가지는 서로 off-set 될 만한 등가가 아님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 등식은 공동체의 정치논리에서는 성립됩니다. 세탁기와 냉장고를 만드는 기업은 우위의 지위에서 상대적으로 열위에 있는 사과와 배 농가를 위한 양보와 배려를 요구 받았고, 그렇게 할 수 있었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는 반면, 그 반대는 성립 될 수 없는 경우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경영학을 공부하다가 외교관이 되었고 통상협상을 했고 지금은 국회의원이 된 선배로서, 오늘 교문을 나서서 기업 현장에서 이윤창출활동을 하게 될 자랑스러운 후배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드리면서 축사를 마치고자 합니다.

 

첫째,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경제 주체로서 기업과 기업인은 바로 현대사회의 주인공들이라는 자부심을 가져주십시오.

 

둘째, 여러분들은 왕성한 창의력과 자유로운 정신을 갖고 무한협력과 무한경쟁에 나서는 것을 결코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고 한다고들 말합니다. 아파서 위로받고도 싶다고 합니다. 그러나 위로받고 싶다고 생각하는 순간 이미 청춘은 아닐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활동무대는 세계시장, 그곳에는 따뜻한 위로보다는 치열한 경쟁이 있는 곳입니다. 여러분의 협력 파트너, 여러분의 경쟁상대는 안암동이나 관악구에 학교를 다니던 친구가 아니고 지금 이 시간 다른 시간대에 있는 미국의 Thomas, 런던의 Henry, 파리의 Pierre, 독일의 Carl, 일본의 나까무라, 중국의 샤오롱 임을 새겨야 합니다. 이들과 여러분의 무한협력과 무한경쟁은 바로 국리 즉, 국가이익의 원천이 될 것입니다.

 

셋째,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업의 뿌리는 바로 우리가 모여 사는 공동체입니다. 공동체의 공동선을 위한 기업의 공헌과 경쟁에 뒤쳐진 사람을 위한 배려는 기업의 또 다른 투자이며, 존재이유입니다. 이렇게 협력 기업의 활동은 민복- , 국민행복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말씀드립니다. 기업은 바로 국익실현과 국민행복의 중심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배운 학문 바로 그 기업에 관한 학문입니다. 현대사회 주인공인 경연인으로 커나갈 여러분, 꿈을 가진 청년여러분,

여러분들의 앞날에 무궁한 발전과 성공,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