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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 이야기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의 소회 - 2011년 11월 2일



지난주 한·미 FTA 토론회(10월 30일)를 마치고 고단한 몸으로 돌아와 사무실 책상에 앉아 지난 몇 년을 돌아보았다.
 
수석대표로서 미국과 협상을 벌이고 세계로 뻗어가는 활기찬 대한민국을 꿈꿨던 시간은 잠시였다.
 
협상보다 더 오랜 시간 우리 내부의 이견을 설득하고 편견과 싸워야 했다.
 
누군가 나를 "옷만 입은 이완용" "미국의 총독"이라며 모욕하는 순간도 참아야 했다.
 
짐을 내려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수고 많다면서 차비를 받지 않던 택시 기사님, 한사코 밥값을 받지 않던 곱창집 아저씨, 멘토가 되어 달라던 대학생들, 그리고 이제 두 살인 손녀를 생각하면서 다시 마음을 다잡곤 했다.
 
2006년 참여정부 역에서 출발한 열차'한·미 FTA호'는 '비준 동의'라는 연료를 공급받기 위해 중간 종착역인 '국회'에 한참 동안 정지해 있다.
 
많은 국민과 기업들은'한·미 FTA호'가 출발하기를 4년 이상 기다리고 있다.
 
지금 한·미 FTA를 반대하고 있는 사람들은 '참여정부 역'을 떠날 때부터 이 열차를 향해 쉬지 않고 돌을 던져 왔다.
 
시간이 흐르고 차장이 바뀌자, 열차에서 내려 돌을 던지는 사람들도 생겼다.
 
이런 편견과 정치적 계산은 냉엄한 국제 경쟁 속에서 우리와 우리 미래 세대의 생존을 보장해 주지 못한다.
 
한·미 FTA가 무슨 요술 방망이는 아니다.
 
그러나 나는 이 협정이 우리와 미래 세대에게 더욱 넓은 기회의 창을 제공할 것이며, 기회는 활용하는사람의 몫임을 확신한다.
 
만약 국회에서 '비준 동의'라는 연료를 성공적으로 주입받지 못한다면 '한·미 FTA호'는 달리지 못하는 철마가 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글로벌 경기침체를 맞아 필사적으로 생존의 활로를 찾는  우리 기업들에 북미시장으로 연결되는고속열차 '한·미 FTA호'가  폐차되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국회에 멈춰서 있는 한·미 FTA를 두고  최근 우리 야당과 반대 측은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를 독소조항으로 들며 고쳐서 다시 가져오라고 주장하고 있다.
 
나는 여기에 동의할 수 없다.
 
ISD는 전 세계 2500여 개 양자협정에 들어 있으며, 우리가 이미 체결한 FTA와 81개 투자협정에도 반영돼 있는 보편적인 제도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 투자자에게 닥칠지도 모를 상대국의 부당하고 차별적인 조치로부터 보호받기 위해서도필요한 제도다. 또한 공공부문에 대한 우리의 정책 재량권도 광범위하고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어 일부에서 주장하듯 ISD로 우리 공공정책이 훼손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정책을 투명하고 비차별적으로 집행한다면 ISD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나는 오히려 ISD가 '한·미 FTA호'의 투자 엔진으로 기능하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
 
 한·미 FTA가 가져올 미래를 불안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스티브 잡스의 멘토였던 앨런 케이는 "미래를 예견하는 최상의 길은 미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고 했다. 나는 문호를 열어 시장을 넓히고 세계 최고와 경쟁하는 일등 국가, 땅덩어리는 작지만 국민이 유복하게살 수 있는  튼실한 기반을 닦는 것이 우리 세대의 사명이라고 믿는다.
 
물론 그 모든 과정에서   우리 경제의 취약 부분에 대한 정책적·사회적 지원과 배려는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 후손에게 '한·미 FTA'라는 고속열차를 타고 미래를 누빌 권리를 빼앗아서는 안 된다.
'한·미 FTA호'의 힘찬 출발을 위한 마지막 관문에서 국회가 우리 국민과 기업, 그리고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외면하지 말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